제가 또 얼마 전에 잠수함 아닌 잠수함을 살짝 탔었습니다.

여기서만 살짝 말씀드리자면, 죽고 싶은데 죽어지지 않으니까, 괴로운거예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 꼭 죽어지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귀에 딱지 생기셨지요?

저도 참 많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선포하였고, 여러분 역시 이 자리에서 또 삶 속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소원이 바로 주님과 함께 내가 죽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져야 열매가 맺히듯이,

믿음 안에서 내 자아가 죽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듯이, 지금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급한 때입니다.

그러니깐, 아직까지도 죽어지지 못하고 핑핑 살아있는 제 자신을 보니, 어찌 괴롭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때가 급하다보니 그 괴로움은 10배로 불어나 절 더 괴롭히더라구요.

예전 같으면 또 나가서 빵을 이만큼 사다가 아구작 아구작뜯어먹고 주님 앞에 나왔을텐데

또 그러면 안되니깐, 그냥 조용히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자아가 너무 강해서 좀처럼 죽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짊어지고 주님 걸어가신 그 골고다 길을 걸어가야 할 제 십자가가 너무 힘겹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남들처럼 믿음이 있어 주님만 의지하고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남들처럼 끈기가 있어 기도로 승리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 저에게는 더욱 더 절대적이고, 강권적인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절대적이고, 강권적인 도우심과 일하심 없이는 도저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수도 내가 짊어져야 할 내 십자가를 짊어질수도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벽이 크면 클수록 그 벽을 무너뜨릴 때에는 그 크기만큼의 더 큰 힘을 필요로 합니다.

제 자아가 얼마나 강한지 그 크기를 아니, 제 자아가 죽어지려면 얼마나 큰 아픔과 괴로움이 동반될지 그냥 상상이 되더라구요.

그러니,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 역시, 그냥 의지해서는 안될꺼라는 계산도 저절로 나오겠지요?

이런 가운데에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 42-44 말씀입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예수님께서 짊어지셔야 했던 그 십자가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것인지 우린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그 고충이 얼만하셨는지 더 피부로 와 닿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흠 없고,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땀 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 말이지요.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케 하시면서, 예수님도 그 크신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나는이란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 이상은 못하더라도 내가 온전히 예수님과 같이 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가 예수님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고, 예수님의 발에 내 발을 포개어 십자가에서 죽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땀 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의 기도하는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만큼 예수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오늘 주신 이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제 안에 담을 것입니다. 그래서, 꼭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 안에 있는 강력한 나를 죽이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다시 태어나는 제가 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땀 방울이 핏방울 되기까지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본받아,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온전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