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약 성경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형제에 대하여 분노로 말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마 5:22 의역)라고 하셨다.

결국 살인이라는 것은 남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든지 자기 자신을 해치든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우울증으로 진단되면 그것은 영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질병이라고 진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순전히 영적인 질병이라고 볼 수도 없고 또 순전히 육체적인 질병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영적인 병이라면 기도를 하거나 은혜를 한번 강하게 받음으로 끝날 수 있고 육적인 질병이라면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함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우울증은 그렇게 간단한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 저절로 고쳐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 울증에 걸리게 되면 일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며 또한 파괴된 감정 체계를 어떻게 재생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며칠씩 잠을 자지 않거나 환청을 듣거나 혹은 자살의 충동을 느낄 때에는 빨리 전문적인 의사의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약물 치료는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급한 발작을 막는 것이지 분노를 없애거나 감정을 재생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울증 환자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꽉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대화 치료밖에 없다.

대화가 아닌 다른 방법은 분노를 일시적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은 될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해야 속에 있는 분노가 빠져나간다.


  옛 날 이야기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이발사가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인 것을 말하지 못해서 병이 생겼는데

산에 가서 소리를 지르니까 나았다는 것이다.

즉 아무도 없는데 가서 소리를 지르니까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람의 기질 자체는 그렇게 밖에 나가서 소리를 지를 정도의

화통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예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