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감정이 상하게 된다.

상한 감정 때문에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자녀들이나 배우자나 힘든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충고부터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충고는 결코 친밀한 관계를 세우는 도움이 된다.

흔히 교회 사람들이 환자를 방문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실수하는 경우는 설교나 충고를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이다.


물론 기도 해서 그래요, 기도하세요,

말씀 봐서 그래요, 말씀 보세요,

등의 말이 나쁜 충고는 아니지만 환자나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들이 그런 말을 들을 비판받고 야단맞고 정죄받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일차적 필요는 마음과 감정이 수용받고 위로받는 이다.

힘든 마음과 감정을 읽어 주고 외롭지 않게 수용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말없이 관심 기울이기와 경청  다음으로,

무조건 공감부터 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슨 때문에 속상했다 하면 속상했겠구나

또는 속상했겠군요라고 하면서 감정을 그대로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면 된다.

그러면 자기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자신이 존중받고, 가치있고, 수용받는 느낌을 갖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되고. 쉽게 친구가 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분이시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경험한 탕자는 아버지 집에서 다함이 없는 행복감, 소속감, 가치감을 느끼며 아버지 집을 다시는 떠나지 않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아들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공감의 위대한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