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사랑

말씀 : 요한복음 3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느껴지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아직도 나의 환경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구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상황에 따라 변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변했지만 주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이 한번도 변한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셨을 때 또한 변하지 않으셨고, 우리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주먹질을

당하셨을 때도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서 주님이 징계를 받으실 때에도,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받기 위해서 주님이 채찍에 맞으실

때에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에도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히셨을 때에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찬송가 214장은 주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보혈의 공로를 우리 다 찬양을 합시다. 주님을 만나볼 때까지.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하지 않고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이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천년 전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실 때 얼마나 영광스럽게 오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낮고, 가장 초라하게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고향으로 도망가는 길에서 아무런 준비없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신 예수님을 강보에 싸았다고 했습니다. 강보는 보잘것없는 포대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낮은 모습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영혼을 온 천하와 바꾸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하는 영혼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낮은 모습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겸손의 왕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그 당시 종들이 하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진정한 왕이 이 세상에 오셔서 종이 되셨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섬기는 자가 되셨습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헌신을 다했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도 가서 이렇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은

하늘의 섬기는 사랑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은 짝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고

그저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는 세상의 왕으로 세우려고만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영혼을 구할 왕이니라.” “너희와 세상을 구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이 말을 들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 그들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실 때 예수님을 방해했고 사역하실 때 늘 비난을 했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재판대에 올렸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께 주먹질을 했습니다.

결국 사람을 사랑해서 오신 예수님은 그 사람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를 향하신 변함없는 사랑 때문인 줄 믿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아무런 대가없이 주는 것입니다. 조건없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나의 진정한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다면,

우리가 축복을 위해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이고 우리도 그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고 경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예수님의 사랑과 똑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에 대한 변치 않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안다면,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고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 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모든 영혼들에게, 모든 열방에 가서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으시는 그 크신 사랑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랑의 전도사들이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받은 은혜와 다짐

 

말씀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저는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지는 않은지요주님의 십자가를 결과로만 알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님, 이제는 제가 변하길 원합니다. 저를 깨뜨리기 원합니다. 제가 주님께 드려지는 깨진 옥합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신 말씀을 마음과 행동으로 이루어 나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나갈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