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벧엘로 올라가자

말씀 : 창세기 35 : 1 – 3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재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본문의 35장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참 험난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이 산 험난한 삶의 원인은 모두 자신의 꾀에 자신이 당한 결과입니다.

야곱의 이야기 중에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습도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철저히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영적인 욕심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인생 전체를 보면 모든 것에 욕심을 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목표한 것이 있으면 목표달성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을 때에도, 형이 받을 장자의 축복기도도 교묘한 방법으로 빼앗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바로 형을 피해 하란이란 곳으로 피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400명의 군사와

형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종과 동물과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을 맨 나중에 서있었습니다.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야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절대로 하나님의 기쁨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거짓말하고 간교했습니다.

형을 속이기도 했지만,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도 속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가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하란으로 도망갈 때, 라반과 라헬에게도 그 때, 그 때 작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간교하면서 아부함에도 뛰어났습니다. 시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 에서 앞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간교한 삶의 방법, 삶의 처세술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에는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실이 없는 삶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뱀을 보고 간교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거짓말과 간교함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마귀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 세상을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자연히 믿음이 없습니다.

진정한 바른 믿음이 없으니까 은혜를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보면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야 할 벧엘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벧엘로 가야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가지 않았습니다.

벧엘이 어디입니까? 그가 에서 형을 피해 도망 갈 때, 밤에 돌을 베고 잤던 그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로하시고 환상을 보여주셨던 곳입니다.

반드시 너를 돌아오게 하리라.”라고 약속을 하셨고 비전을 주셨던 곳이 벧엘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제 주님께 바른 믿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주님께 제단을 쌓고 서원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벧엘이 아닌 세겜이라는 땅으로 갔습니다.

세겜의 족장에게 땅을 사고 그곳에 정착을 하려고 했습니다.

세겜이라는 땅은 이방 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이고 쾌락의 도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이 아닌 세상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원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말씀을 잃어버립니다. 기도를 잃어버립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그 삶은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야 할 야곱의 가정이 세겜으로 가서 살아갈 때, 그들의 삶은 어땠습니까?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습니다. 야곱의 아들 둘이 세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할 야곱의 가정이 세상에 묻혀 살았을 때의 결과였습니다.

그 당시의 야곱은 정말 눈앞이 아찔했을 것입니다.

이방 민족에 둘러싸여서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마음이 무너져서 무릎을 꿇었을 때, 잊어버렸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올라가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정이 무너진 그 때야 비로소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그 때의 상황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의 2 - 3절을 보면,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재단을 쌓으려 하노라

이 때서야 야곱은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 때서야 야곱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모두 버리겠다고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과 하인들에게 말을 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모든 이방 신을 버려라.”, “너희들은 정결하라.”, “세상의 옷을 벗고 하나님의 옷을 입어라.”

이것은 야곱이 더 이상 세상에 미련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방법, 잔머리를 버리겠다는 야곱의 믿음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이 이러한 믿음의 선포로 벧엘로 올라갈 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야곱을

축복하셨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35 9 -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여기서부터 믿음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은 간교함과 거짓말의 삶이었지만, 믿음의 선포와 벧엘로 올라갔을 때에는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로 바뀐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벧엘로 올라간 이후의 삶을 말을 합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의 야곱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야곱만큼 이기적이고 야곱만큼 잔머리를 굴립니다.

우리도 세상을 좋아합니다.

세상을 놓아야 함을 알면서도 막상 놓지도 못합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고 또한 완전한 세상의 방법도 아닌 가운데 갈등하면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마치 벧엘로 올라가기 전 야곱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하나님과 약속했던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 때 바로 야곱의 영적 갈등과 영적 방황은 끝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과 세상 것에 갈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서 있는 사람은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서 있는 사람은 갈등이 아니라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의 것과 세상 것에 갈등하고 있다면 그 어정쩡한 곳에서 벗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인지 세상의 자리인지 확실히 할 때입니다.

나와 약속하신 벧엘에서 자비로움으로 기다리시는 주님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받은 은혜와 다짐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이 세상이고 하나님 자리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는 하나님 자리와 세상의 자리를 구분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일, 세상의 일이 뒤죽박죽 순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순서를 정한다 했다면 세상일이 우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주님과 세상의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을 때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방식을 주님의 일에 끼워 맞추는 어리석은 생각, 습관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도 세상적인 잔머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효율만 생각하는 것,

결과만 생각하는 것, 세상의 최소의 것으로 최대를 효과를 보려는 생각입니다.

생각이 악한 자의 생각을 살피도록 성령님 도와주소서.

세상의 잔머리가 저에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 그 때 주시는 성령님의 생각을 세상의 머리로

바꾸는 저의 모습이 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소서. 성령님의 생각을 세상의 세상으로 변질시키는 저를 용서하여주소서.

나의 세겜의 생각들을 벧엘의 생각, 성령님 주시는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내가 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