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창세기  45 : 5 - 8

제목 :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자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많은 시련가운데 살았지만 요셉의 믿음이 귀한 것은 시련을 당했을 때 믿음으로 이겼다는 것입니다.

형들에게 의해 애굽 상인에게 팔려가고, 애굽에서는 노예의 모습으로 성실하게 있을 때 억울하게 감옥을 가게 됩니다.

삶의 상황, 상황은 요셉을 악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런 상황에서도 분함이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슬펐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에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훌륭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요셉은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을 낮추는 훈련 과정을 통해 요셉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7년 동안의 가뭄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곡식 창고를 만들게 했습니다.

가뭄이 계속 되는 때에 애굽 주변의 모든 나라가 애굽에 곡식을 꾸기 위해 왔을 때 요셉의 형들도 요셉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13년 전에 버린 요셉이 아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떨고 있는 요셉은 형들에게 오늘 본문의말씀으로 믿음의 절정을 보입니다.

사람이 죄로 범죄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오히려 그 인간이 예수님을 주먹으로 치고 침을 뱉고 돌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용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요셉을 예수의 모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에게 세상의 권세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훌륭한 것은 그 권세를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높은 권세를 자신의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 주신 권세를 주님의 뜻을 이루는 데만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숙한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첫 번째 아이의 이름을 과거를 잊었다라는 의미의 므낫세 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과거의 상처, 아픔을 잊었다는 뜻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으로 아들의 이름을 붙여주고 모든 사람을 용서했습니다.

자신을 팔았던 형,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보디발 장군의 부인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를 낳아 두배의 결실이다라는 의미인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것 또한 요셉의 믿음의 선포입니다.

나의 과거와 아픔과 상처를 주님께서 치료하시고 갑절로 축복하셨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더욱더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형들의 모습은 요셉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요셉이 가만 놔둘 리가 없다고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은 동생에게 찾아가 형들에게 보복하지 말고 잘 돌봐주라고 유언을 했다는 거짓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언젠가 자기에게 보복을 받을까봐 두려워하고 권위를 가진 사람은 언젠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세상은 많은 성공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자들이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배신을 당할 때도 있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었을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일에 누명을 받고, 이용을 당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성공을 한 사람은 겉으로는 말짱해 보이지만 마음은 많이 파괴되어있어서 자신에게 해를 준 자를 끝까지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은 더 큰 상처를 받고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가?

요셉이 자신의 모든 상처를 잊어버리고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삶 속에서 역사하고 운행 되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팔았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세상을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초월할 때 용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향하신 우리의 뜻을 안다면 일일이 이 세상의 일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 집사에게 돌을 던질 때 스데반집사의 행동은 돌을 맞으면서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죄를 저들은 알지 못하오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일차원적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스데반 집사를 세상을 초월한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분명히 알 때 이 세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내 분을 참지 못하고 내 분대로 살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뜻을 발견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아는 것이 요셉이 요셉 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해가는 것 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받은 은혜와 다짐

하나님 제가 정말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요..

아직 내 분대로, 내 뜻대로 모든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알기 전에 눈앞에 보이는 것을 판단 하는 얕은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고 하늘에 소망을 둔 요셉이나 스데반 집사가 대단해 보이고 나와는 먼 사람 같지만 언젠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고 성숙한 믿음을 가진 저의 모습이 되길 소원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사는 제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