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 요한복음  9 : 1 - 7
제 목 : 빛이 있을 동안에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인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뇌성마비인 명희 시인은 집이 가난해 또래들이 학교를 가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을 때에 방한 구석에서 절망을 배워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서 사는 삶이며, 자신을 저주 받은 몸, 저주 받은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반항했습니다.

아무리 불평하고 발버둥쳐도 자신의 삶이 변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 후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송명희 시인에게 받아 적게 하신 내용이 <>라는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가진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결국 이 시가 송명희 시인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 행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녀는 공평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에는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죄의 원인에 대한 결과로 맹인이 되었다는 것으로 맹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도 장님을 보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님인 본인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두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하고 불행히 살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체 조건, 환경 조건으로 행복과 불행을 판단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속한 가치관이며 판단 입니다. 세상에 속한 생각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가치기준, 생각입니다.

내가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감사하고 영광 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은 물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많은 좌절과 고통, 서러움 속에 살았던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두 눈을 뜨게 된 후에는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영광을 체험한 자가 되었습니다.

눈을 뜨고서 맹인에게는 더 이상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셨고, 불행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뜨고 바리새인들 앞에서 당당히 예수님의 일을 전했습니다.

위험한 줄 알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일을 당당히 전했던 그에게 바리새인들은 

<9: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습니다.

권력이나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른다면, 자신에게 향한 계획을 모른다면 가난하게 태어난 자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보다, 학력이 없는 자보다 더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장님이었습니다. 그때는 외롭고 아픔뿐인 삶이었고, 거절과 좌절의 삶이 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행한 삶이 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졌습니다. 알지 못하는 생명의 빛으로 인해 우리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후 삶의 행복의 기준이 바뀌고,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명의 빛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어두운 인생에 빛이 비춰짐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빛을 체험한 우리에게 너희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몸과 마음을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내 자신을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전해져서 그 영혼이 사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본문 4-5>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빛 되신 예수님을 이 땅에 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영적 소경인 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이 세상에 빛이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구원의 빛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인 우리들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입니다.

영적 소경에서 눈을 뜨게 된 우리는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두움이 이 땅을 가리기 전에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전하고 싶어도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밤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를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님의 빛이 우리와 함께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좌절과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있는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구원의 빛을 희망의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빛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빛이 있을 동안에 전해야 합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비추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작게는 일본땅뿐 아닌 이 땅 끝까지 주님의 빛을 비추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받은 은혜와 다짐

아직 살아서 내 의지대로 하려는 내 모습을 회개 합니다.

내 안에 나를 온전히 비워서 주님의 빛을 전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쓰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전하라 하시는 곳에서 주님의 뜻을 모두 전하기 위해 나를 비우기 원합니다.

온전히 쓰실 수 있도록 나를 죽이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영적인 소경이었던 내게 참 빛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흘려 보내서 어두운 곳에 좌절한 영혼, 저주 받은 삶이라고 낙망하는 영혼을 찾아가 빛 되신 주님을 전하기 원합니다.

세상의 가치기준이 아닌 주님의 계획과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들을 위해, 주님의 빛을 전하기 위해 나를 온전히 드리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