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빛이 있을 동안에

말씀: 요한복음 9:1-7

 

요한복음 9:1-7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리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는리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대화를 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에서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불행하다는 그 척도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재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송명희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머니가 임신했을때 양수가 터져서 출산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뇌성마비였습니다. 팔과 몸이 뒤틀려있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입이 비뚤어져 말도 제대로 못합니다. 정신은 정상이라서, 일반사람과 생각하는 것들은 같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학교도 가지 못했습니다. 외롭게 집에서 생활해야했습니다.

 

자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꿈도 없었고, 방한구석에 내버려둔채로 절망을 배워야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면 할수록 미칠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저주받은 몸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루에도 몇번이나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죽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못해사는 삶이었으며, 모든 일이 불만스럽고 원망스러운 생활이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의 어머니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지만, 하나님을 거부하며 계속 반항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말 계신다면 왜 내가 이 몸으로 살아야되는지 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적으라고 해서 연필을 들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니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서러운 마음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비틀린 몸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그때에 나는 연필을 멈추었고, 더 이상 쓸수 없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구요? 뭐가 공평합니까? 내 눈에는 하나도 공평한 것 같지 않은데요. 나는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써라

난 못해요. 절대 쓸수없어요. 내겐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니예요

 

하나님과 씨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받아적었던 내용을 몇 번이나 지웠다가 다시 쓰고 한 것이 알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애원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몸부림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완고하신 하나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말한대로 쓰라고 한 것입니다. 밤새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결국 하나님이 이기셨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시가 그 유명한 라는 시입니다. 이 시로 인해 천상의 시인이라고 유명해졌습니다. 그녀가 뇌성마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삶의 용기를 주었습니다.

 

송명희 시인 자신은 이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소경된 자들을 보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부모탓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 생각은 장님으로 태어난 것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무엇가가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이미지로 소경을 평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이 그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의 부모 때문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좋다, 나쁘다라는 것이 아니고, 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멀쩡히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다 행복합니까?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조건으로 행복하다, 불행하다, 좋다, 나쁘다라라는 생각은 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가치 기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이보다 더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뜻과 계획일 있다는 것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소경은 살면서 좌절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두 눈을 뜨게 된 후부터는 볼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영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불공평한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두 눈을 뜨게 된 소경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당당히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네가 죄인으로 태어나서 우리에게 가르쳐라 하느냐라고 화를 내며 억지를 부립니다.

 

요한복음 928절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어떤 사람들은 권력, 명예, 재물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을 모르고, 영생을 모른다면, 자기 삶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한다면, 가난하거나 학력이 없거나 장애를 가진 자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장님이었습니다. 영적인 장님이었을 때에는 외롭고 아픔과 거절과 좌절 뿐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망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날 우리에게 예수님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알수 없는 빛을 통해 우리의 영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된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인생의 행복의 척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 있음에 감사하십시요.

 

너희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를 원하노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예수님께 드렸을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내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사람에게 비추어져 그 영혼이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빛 되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의 빛을, 생명의 빛을, 소망의 빛을 비추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와 다짐

공평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을 드리며, 세상의 가치관을 내안에서 버리며,

오직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