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자

말씀 : 요한복음 1 : 1 – 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본문의 1절과 2절을 보면 태초부터 예수님께서 안 계신 때가 없었고 안 계신 장소가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의 메시지는,

첫 번째는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너희는 나에게 소망을 가져라입니다.

 

본문 3절 말씀과 같이 모든 만물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우리도 모든 만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만드실 때는 분명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있었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목적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획, 그 마음을 품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 항상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본문의 4 -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악하게 하고 패망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빛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단과 같이 교만합니다.

이단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약간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이단도 예배가 있고 찬양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방향만 약간 바뀐 것 같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가 걸린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중에 교만한 사람은 이단처럼 교만합니다. 겸손한 것 같지만 교만합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은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지만 온전한 은혜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잠언 16 1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내가 빛이 아니라 주님만이 참 빛이라고 믿고 인정하고 주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주님의 빛을 반사하며 살아갈 때 이 모습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겸손한 자의 모습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물러간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빛이 있더라도 어두움이 존재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빛이 빛 같아야 어두움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빛이 밝고 그 빛이 크지 않으면 어두움도 함께 존재합니다.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려면 최소한 그 빛은 어두움보다 커야 합니다.

본문의 예수님은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빛은 자기만이 빛나는 빛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이 빛은 어두움이 존재할 수 없는 큰 빛임을 믿습니다.

그 빛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주님의 그 빛대로 우리도 비쳐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삶을 보세요. 내가 빛 되신 주님을 섬기는데 나는 왜 믿음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내가 빛 되신 주님을 믿는데 왜 변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빛보다 삶의 어두움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왜 같은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는데 삶에서의 믿음의 영향력은 다 다른가?

각자 가지고 있는 빛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에 주님의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 신앙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라

본문 뒤에 나오는 세례 요한에 대해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세례 요한은 참 빛을 증거하는 사람이지 참 빛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을 증거하는 빛의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 7 - 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세례 요한은 참 빛을 증거하러 온 자였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빛을 발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빛나는 빛을 비취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주님께서 계획하신 계획 중에 하나임을 믿습니다.

더 이상 반딧불 같은 작은 빛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크고 밝은 주님의 빛을 비추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빛을 비출 수 있는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죄와 구별된 거룩함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주 예수를 증거하는 복음 전도자로 나아가는 모습이 작은 예수의 모습임을 믿습니다.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계획을 두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비추신 빛을 반사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붙잡고 기도와 찬양과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으로 내 삶의 어두움과  열방의 어두움을 물리치는 참 된 빛을 비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받은 은혜와 다짐

 

설교 말씀 중에 주님의 빛을 비추기 위해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제가 부딪힙니다.

종교인을 넘어 주님께 헌신된 자가 되었고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목적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적이 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죽을 수 있는가? 진정으로 십자가에 못박힐 수 있는가? 기도하고 기도하고 주님께 묻는 가운데 그 질문의 시작과 끝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죽고 싶어도, 십자가에 못박히고 싶어도 제 스스로는 절대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 간절히 구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 내가 죽어질 수 있도록 내 안에서 나는 죽여주소서. 제가 저를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내가 죽어지고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우리 주, 우리 왕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