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양의 사랑
(하나님 사랑과 세상적인 사랑의 차이점 )
세상적인 사랑은 내게 만족과 유익을 주는 것에 기준을 둔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서에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요일 2:15-16).
그는 세상의 사랑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요약해 놓았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한다’의 의미는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제공해 준다는 뜻임을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적으로, 한 남자가 그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말은 아내가 언제나 남편이 원하는 일을 하고,
또 그가 원할 때마다 그것을 해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떤 이는 반대로 자신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하는 대상을 향해
‘증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이나 자녀들이,
자신이 원할 때에 자신의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증오하기도 한다.
이와는 아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것과 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된 모습에도 불구하고(롬3:10-12),
자신의 순전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사랑한다”라고 하시는 의미는,
내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참으로 낯선 개념이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또는 심각하게 고집불통인 사람을 만날 수록,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사실들을 계시해 주셨을 때,
나는 세상적인 사랑의 개념으로 파괴시켜 망쳐 놓았던 이전의 관계들을 보여 주시길 간구했고,
이를 통해 철저한 회개에 이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도록 기도했다.
사랑에 대해 살펴보았던 이 첫 번째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조명해 주시길 바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神様の愛と世的な愛の違い
いろんな模様の愛
(神様の愛と世的な愛の違い)
世的な愛は、自分に満足と益を与えることに基づいている。
使徒ヨハネは彼の手紙に、このことについて詳しく説明をしている。(ヨハネの第一手紙2:15-16)
彼は世の愛を“肉の欲、目の欲、暮らし向きの自慢“だと要約しておいた。
世が語っている“愛する”と意味とは、愛している対象が私の願う通りに提供してくれるという意味であると、みなさんも知っているでしょう。
世的ことで、一人の男性が彼の妻を愛すると言う時その言葉とは、妻はいつも夫が願っていることをして、また彼が願っている度にそのことをしてくれるという意味である。
コインの両面があるように、ある人は反対に自分の生活を安らかにしてくれない対象に対して、“憎しみ”という単語を使うようになる。妻は夫や子供たちが、
自分が願う時に、自分の方式通りに行動をしないという理由だけで彼らを憎んだりもする。
これとは真逆に、神様の愛は与える事と仕えるという事に焦点を合わせている。
父なる神様は、私たちが罪深い姿であるにも関わらずに(ローマ人への手紙3:10-12)
自分の完全な愛を注いで下さる方である。
イエス様が私たちに対して“愛する”とする意味は、
私が心の深いところから神様の愛を引っ張り出すので、価値ある存在である意味だ。
本当に不慣れな概念であるが、
何の価値もなくて力もなく、また深刻に意地っ張り人に会えば会うほど、
あなたが神様の愛に経験できる可能性は、もっと大きくなる。
神様が私にこのような事実を啓示して下さった時、
私は世的な愛の概念で破壊させて壊れていた以前の関係を見せてくださるように切に祈って、これを通して徹底な悔い改めに至って、神様の栄光のために神様の愛を見せ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祈った。
愛に関してのこの一番目の概念を持って、
神様があなたの心を照らしてくださることを願いながら、祈る時間を持ってほしい。
“しかし私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私たちのために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私たちに対するご自身の愛を明らかにしておられます”(ローマ人への手紙5:8)
愛の技術(ノーオム ウェイクフィールド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