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인근 발레카스의 노동자 밀집 거주 지역에서 최근 한 여성(33)이 과일·채소 가게 앞에서 오래된 감자 10여개가 든 바구니를 들고 서성였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최근 해고된 이 여성은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식품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밤마다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이날도 가게가 문을 닫을 때 내다버리는 과일이나 채소를 얻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그는 "돈이 없을 때는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쓰레기통 뒤지는 일이 일상화


청년 실업률이 50%가 넘은 스페인에서 먹고살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일상화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 보도했다. 보건당국은 쓰레기통에서 상한 음식을 꺼내 먹다 병에 걸릴 것을 우려해 수퍼마켓 쓰레기통에 자물쇠까지 채우는 실정이다.

마드리드 외곽 대형 과일·야채 도매시장에서는 근로자 여러 명이 트럭에 상자를 서둘러 싣는 모습이 보였다. 경매를 준비하려는 게 아니다. 썩은 과일이나 야채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에 몰래 빼돌리는 것이다. 쓰레기통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을 하는 관청 직원 에두아르도 베를로소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먹을 것을 찾는다는 건 인간의 존엄성에 배치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마드리드에서는 저녁 때 수퍼마켓이 문을 닫고 쓰레기통에 자물쇠를 채우기 전에 사람들이 집단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기자가 취재하려고 하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야채 찌꺼기 줍는 게 연금"

도매시장은 개인에게는 물건을 팔지 않지만 매일 아침 거의 모든 연령대의 남녀가 도매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서성이고 있다. 아침에 들어오는 도매 물건을 시장에 하역할 때 생기는 부산물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페루 에서 이민 온 빅터 빅토리오(67)씨는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야채와 과일을 얻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주워모으는데 오늘은 고추와 토마토 그리고 당근을 얻었다"면서 "이게 내 연금이오"라고 말하며 웃었다.

매일 야채 찌꺼기를 주워가는 사람들을 보는 상인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다. 도매상점 주인 마누 갈레고씨는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무료급식 의존자 100만명

뉴욕타임스는 요즘 스페인에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전했다. 가톨릭 자선단체 '카리타스'는 2010년 무료 급식 의존자 수는 100만여명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지난해에는 6만5000명이 더 늘었다. 현재 스페인 가정의 22%가 빈곤층으로 분류되고 약 60만명은 수입이 전혀 없다고 카리타스는 전했다.

상황은 계속 악화될 전망이다. 스페인 정부가 최근 세수 확보를 위해 대부분 상품의 부가가치세(VAT)를 3% 인상했다. 지방 정부들은 재정 적자를 줄이려고 저소득층 학생 대상 학교 무상급식을 폐지하고 있다. 스페인은 이런 노력에도 국가재정이 바닥나자 지난 6월 1000억 유로의 은행권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국가 차원의 전면적 구제금융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 가서 청소부 일자리라도…

금융위기는 남유럽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커피 문화까지 바꿔 놓고 있다. 이탈리아 · 스페인 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현재 5~6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5일 보도했다. 이탈리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지난해 6년 만에 최저치인 5.68㎏이었다. 이 국가들에서 커피 소비량이 줄자 고급 커피를 만드는 아라비카 원두 가격도 지난해 34년 만에 최고 가격(파운드당 3.089달러)에서 현재 43% 급락한 1.7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그리스 에서는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생계형 낚시꾼이 급증했다. 지난해 그리스 낚시 면허 신청 건수는 약 8만7000건으로 2010년에 비해 배로 늘었다. 그리스에서는 낚시 면허가 있어야 바다·강·호수에서 물고기를 낚아 배에 실을 수 있다.

그리스 중산층조차 소득이 급감해 외국 하층 노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최근 그리스 회사원 사이에서는 스웨덴 어를 배우는 것이 붐이다. 스웨덴에서 청소부 등으로 취직하기 위해서다. 스웨덴 노동 비자를 받은 그리스인이 올해만 1100명으로 2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