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수권법은 안보를 지나치게 우선한 나머지 국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미국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공항경비대의 한 병사가 경비견과 함께 승객들 소지품을 탐색하는 모습.

 

 

매년 미국 국무부는 지구상 모든 나라의 인권을 평가하는 ‘세계인권백서’를 발행한다.
백서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인권상황을 소상히 묘사하고, 비판한다.
예컨대 지난해 4월에 발표된 인권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며 죄의 자백을 강요받는다.
사법제도의 합리적인 절차가 갖춰져 있지 않다’라며 적나라하게 비난했다.
이란에 대해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개인 사생활이 제한된다’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인권보고서를 뒤집어 보자.
여기에는 ‘미국은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자유국가’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올해 1월 1일자 신문에서 단호하게 ‘노(No)’라고 답했다.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자유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언론은 미국이 중국과 이란을 인권이 유린되는 나라로 비난할 형편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상하원을 통과해 지난해 12월 3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이 있다.
바로 ‘국가수권법(NDAA·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법이 ‘이란의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어떤 경제주체도
미국의 금융기관과는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진짜 알맹이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테러 용의자로 의심되는 미국 시민에 대해 법 절차 없이
무기한 구금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특히 ‘미국 시민권자라도 대통령이 테러리스트로 의심하거나
테러에 연루돼 있다고 판단하면 살해할 수 있다’ 대목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이 법은 또 테러와 관련된 범죄자를 일반 법정에 세울지,
아니면 군사재판을 받게 할지를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안보 위해 자유 제한, 부시보다 더해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개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감시 기능도 더욱 확대됐다.
2001년 부시 전 대통령이 처음 명문화한 ‘애국법’은 금융거래 정보나
통화 감청 등에 한해 영장 없는 접근을 허용했다.
오바마 정부는 이에 더해 국가 안보에 필요할 경우
기업 문서부터 도서관 검색 기록까지 샅샅이 훑을 수 있도록 했다.
외국의 비밀 정보를 다루는 해외정보감시법원(FISC)도 테러 연루 유무에 관계없이
일반인에 대한 도·감청이 훨씬 자유로워졌다.

이 법의 통과로 미국 정부는 온 나라에 수십만 개 보안카메라를 설치하고,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기 위한 조직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월 15일자 신문에
‘미국이 더 이상 자유로운 국가가 아닌 이유’라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국가수권법이 포함하는 ‘자유를 구속하는 10가지 조항’을 열거한 내용이었다.
국가수권법이 1933년 독일 나치스당이 만든 수권법에서 유래했음을 들어
전제국가들만 할 수 있는 독재적 행위로 규정하는 논객도 있다.


[장광익 매일경제 워싱턴특파원 pald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