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네덜란드의 과학자 론 푸히르 교수는
몰타에서 열린 인플루엔자 학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H5N1은 치사율이 높지만 인간에게 쉽게 전염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푸히르 교수는 H5N1 유전자를 변형시켜 흰 담비(ferrets)끼리
재채기나 기침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흰 담비는 인플루엔자에 대한 반응이 사람과 유사해
사람간 인플루엔자 전염을 연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실험 방법 공개하면 생화학 테러 악용 우려 vs 백신 개발에 필요

론 푸히르 교수. 네이처 제공.
 
학회가 열린지 세 달 뒤, 뜻밖의 방향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 20일 미국 바이오안보과학자문위원회(NSABB)가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각각 서한을 보내 론 푸히르 교수의 논문과
요시히로 카와오카 교수 논문의 “주요 결론은 공개해도 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칠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실험을 통해 따라할 수 있는
세부 방법은 포함하지 말 것”을 권고한 것이다.
논문의 핵심 내용을 모두 공개하면 생화학 테러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카와오카 교수 역시 푸히르 교수처럼 H5N1의 전염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고,
두 저널은 두 논문의 게재를 검토 중인 상태였다.

논문 저자들과 각 저널의 편집장들은 NSABB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사이언스의 브루스 앨버츠 편집장은
“향후 미국 정부의 발표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고 답했다.
네이처의 필립 캠벨 편집장은 “NSABB의 권고를 주목하고 있으나
어떤 인플루엔자 연구든 전체 세부 사항을 연구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공중 보건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실험 방법과
데이터를 적절하게 공개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논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론 푸히르 교수는
“핵심조항을 삭제하라는 NSABB의 권고에 의문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
H5N1처럼 전 세계 공중 보건과 인플루엔자 연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한 나라(미국)가 결정해도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영국 글로벌 건강 안보 센터의 데이비드 L. 헤이먼 센터장은
“바이러스를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백신을 만들어
바이러스에 대비하는 일”이라며
“2002년에 폴리오바이러스(소아마비의 병원체)가
드 노보(de novo) 방식으로 합성되면서 질병관리의 관점이 바뀌었다”고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드 노보 방식이란 유전자 지도를 따라 DNA의 기본 단위가 되는 조각들(dNTP)을
하나씩 붙여가며 DNA를 합성하는 것이다.
유전자 지도와 적절한 화학재료만 있다면
실험실에서도 바이러스의 DNA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헤이먼 센터장은 “언제든지 바이러스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만큼,
백신 제조를 위해 바이러스 돌연변이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시히로 카와오카 교수. 네이처 제공.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조치를 제시하며 바이러스 돌연변이 연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국 럿거스 대학 생화학부 리처드 H. 에브라이트 교수는
“바이러스 유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현 3+등급인 H5N1 바이러스의 바이오안전등급을
가장 높은 4등급으로 올리자”며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병원체의 독성과 전염성을 증가시키는 연구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사전 검토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바이오안전등급이 3+(BSL-3+)면 연구자들은 실험실을 나갈 때 샤워를 해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바이오안전등급이 4로 올라가면 연구자들은
우주복처럼 생긴 전신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논문 저자들, 실험 60일간 중단 선언…국제포럼 열어 토론 예정

그렇다면 실험실에서 연구된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미국 무기 규제 및 비확산 센터의 린 클로츠 교수와 에드 실베스터 교수는
1년에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될 수 있는 확률을 1%로 가정했다.
이는 2003년부터 각 실험실에서 병원체 연구가 이뤄진 총시간이
모두 300년(lab years) 이상이라는 가정과
실제로 3번의 사스 바이러스가 유출된 전례를 고려한 결과다.

클로츠 교수팀은 논란이 된 두 실험실 외에도 전 세계 최소한 40개의 실험실에서
위험한 병원체를 연구한다고 봤다.
클로츠 교수의 계산에 의하면 1년 이내에 이들 42개 중 단 하나의 실험실에서라도
병원체가 유출될 확률은 34%였다.
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확률은 80%에 달했다.
클로츠 교수팀은 “사람에게 전염되는 H5N1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확률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논문 저자를 포함한 인플루엔자 연구자들은 지난 20일 네이처를 통해
60일간 실험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이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위험 요소를 토론하기 위해
국제 포럼을 조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 등도
국제적인 감독 기준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비 기자 hel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