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최대한인교회를 세운한진관 목사 사모의 수기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온 내가 목사 사모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목사님을 따라 발이 부르트도록 일을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피곤과 짜증, 원망 뿐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목사님도 고민 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교회는 사랑이 없고 냉랭하여 성도가 점차 줄어들기 까지 했다.

자유주의 신학에 길들여져 있어서 부흥회란 말조차 못하게 했던 목사님의 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