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 1-7

빛이 있을 동안에

 

우리는 장님을 보면 불행하다, 불쌍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지고도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행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 부모의 잘 못입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신체 조건과 환경의 조건을 보고 좋다, 나쁘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 이 세상의 가치이며, 이 땅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처럼 비록 세상의 가치, 세상의 판단 기준으로 보았을 때,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불행과 불쌍한 신체 조건, 환경 조건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한다면 이 어찌 불행하다, 불쌍하다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 소경은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이야기를 바리새 인들 앞에서 증거합니다.

부모님들 조차 추방 당할까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었지만, 이 소경은 담대하게 예수님의 일하심을 증거합니다.

그러자, 네가 죄인으로 태어난 주제에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 드느냐 라고 오히려 꾸중을 듣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장님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장님이었을 때에는 외롭고,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적으로 눈을 뜬 우리들의 처지와 환경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 앞에서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몰라 영적인 장님으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원하노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눈을 뜨게 된 우리는 주위의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자들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나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빛이 사라지는 마지막 때, 어두움이 깔리는 때가 오면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싶어도 증거할 수 없게 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영적으로 눈을 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하며, 주의 영광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소경이 되지 않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ㅇ

빛이 있을 동안에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신실한 주의 일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ㅇ

더욱 영적인 눈의 시력이 좋아지고,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주님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ㅇ

나의 나 된 모든 것이 오직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길 믿고 감사드립니다ㅇ